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잔 자치령 (문단 편집) === 신 제국의 수도가 되다 === 이후 자유행성동맹마저 쓰러지고 온 우주가 [[로엔그람 왕조]]의 것이 되자 제국령에 위치한 수도성 오딘은 구 동맹령(노이에란트)과 너무 떨어져있어 행정이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또한 라인하르트 본인이 전쟁이 끝나고 은하를 통일한 이상 동맹 주민들도 황제 아래 모두가 평등한 제국민으로 대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문벌귀족(은하영웅전설)|문벌귀족]]들 눈치만 좀 보면 되던 골덴바움 왕조 시절과 달리 400억의 전 인류의 요구를 모두 적정선에서 충족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라인하르트는 이에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때부터 페잔을 신 제국의 수도로 삼으려고 하였고 즉위 이후 이를 실행한다. 우선 우주력 799년 8월 8일, 제국군 총본영과 군무성 및 공부성을 페잔으로 이전하였다. 제도 [[오딘(은하영웅전설)|오딘]]에는 헌병총감 겸 수도방위 사령관 [[울리히 케슬러]] 상급대장, 후방총사령관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 [[지구교]] 토벌을 위해 [[지구(은하영웅전설)|지구]]로 원정갔다가 돌아오는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과 황제를 대리하여 오딘을 다스릴 국무상서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 백작이 남았다. 우선 8월 30일 미터마이어 원수가 먼저 페잔으로 가고, 9월 17일 카이저 라인하르트와 로이엔탈 원수 등 황제 및 제독들이 페잔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공부상서 [[브루노 폰 질버베르히]]는 제도수도건설장관에 취임하여 신 제국의 새로운 궁전 [[뢰벤브룬]]의 건설에 착수했다. 그러나 뢰벤브룬의 건설은 [[페잔 폭탄테러사건]]으로 질버베르히가 폭사하면서 건설이 지체되었고, 결국 카이저 라인하르트 생전에는 건설되지 못했다. 이후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7월 29일, 공식적으로 은하제국의 수도가 오딘에서 페잔으로 옮겨졌다. 오딘에 남았던 국무상서 마린도르프 백작 이하 100만 명에 달하는 관료들도 페잔으로 이전하고, 케슬러 상급대장과 총본영 참모총감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중장을 비롯한 무관들도 페잔으로 이동하였으며 후방총사령관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이 오딘의 방위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로써 페잔 자치령은 멸망했지만 페잔 행성은 신 제국의 수도이자 전 인류사회의 중심지로서 번영하게 되었다. 제국에 정복당한 페잔인들은 제국의 일부로 전락해가는 조국을 보며 "문명인의 지혜가 야만인의 완력에 패했다."고 평하는 등 개탄의 시선을 보냈으나 라인하르트의 능력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칭송했다. 만약 라인하르트가 무능하다고 매도한다면 그 무능한 자에게 패배한 페잔인은 더 무능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페잔인들은 세상이 뒤바뀌는 시대의 격변이 일어났으니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며 제국군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병영을 건설하고,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등 점령작업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기존 페잔 자치령 체제는 평등하거나 만민이 행복한 체제가 아니었으며 거상들은 주도권을 놓지 않으며 중소상인들을 핍박하고 자유로운 경쟁사회에서 참패하고 그대로 몰락해버린 사람들도 가득했기 때문. 이러니 제국군의 정복은 기존 체제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년층도 기존에 페잔을 다스리던 기득권층의 지배에 반발하여 젊은 정복자 카이저 라인하르트에게 정서적 지지를 보내었으며 제국 정부도 이런 움직임을 감안하여 젊은 페잔인들을 우대하는 등 페잔과 제국의 관계는 공존의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리스 코네프]], [[칼레 윌록]] 등 몇몇 독립상인들은 공화주의 진영과 연계하여 반제국 투쟁을 벌였다. [[양 웬리]]도 동맹의 이권을 제공하거나 제국이 경제 통제 정책에[* 특히 제국 정부가 페잔인이 듣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국유화]]나 물자 전매 조치를 취한다면 더더욱 페잔인들을 끌어들이기 좋을 거라고 양 웬리는 내다보았다.] 반발한 페잔 독립상인들을 혁명전쟁의 스폰서로 삼으려고 했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페잔인을 포섭하려 할 때 [[율리안 민츠]]를 통해 페잔 자치정부가 [[지구교]]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이 판명되어 재검토에 들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보리스 코네프]]를 페잔으로 보내 페잔인들과 접촉하여 그들을 조직화하려고 했지만 결실을 맺기도 전에 [[회랑 전투]]가 끝나고 [[양 웬리]]가 암살당하면서 페잔인과 연계한다는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이후 [[엘 파실 독립정부]]에 협조하던 독립상인들은 명목상 이제르론 요새를 이탈했지만, '봉쇄돌파 그룹'을 조직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도 공화정부가 제국과 타협하여 [[바라트 성계]]의 내정자치권을 인정받자 반제국 투쟁을 그만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